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김 도 연
세계 최대의 예술과학종합허브의 설립을 목표로 하는 나의 꿈은 공간 예술가이자 공간과학자이다. 비록 지금도 막연하기 짝이 없지만 하루하루 끊임없이 구체화해 나가고 있는 나의 꿈은, 그리고 점차 확고해지는 ‘내 꿈’에 대한 나의 믿음은 공부의 목적이 대학입시가 아닌 내 꿈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 중순쯤부터 점차 그 틀을 잡아갔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신입생인 나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지방의 평범한 신설고등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내신이 내 공부의 전부인 양 살던 학생이었다. 물론 사설노트를 작성하기도 하고, 독서 감상문을 작성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활동이라기 보단,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했을 뿐이었다.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좋은 내신을 받고, 친구들, 선생님들과의 관계 또한 무난했던 나는, 내 삶에 대해 나름의 만족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2학년 중간고사가 끝났을 무렵, 인터넷 서핑 중 찾아보게 된 여러 학업 커뮤니티들을 보며 난 내 삶에 대해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흔히 교과 외 활동이 내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라 불리는 것들을 그 때 처음 접한 나에게 그러한 활동들은 ‘스펙’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후회 없는 삶을 위해 필요한 요소로서 의미가 있었다. 교내활동에 충실하고, 좋은 내신 성적, 좋은 모의고사 성적을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찾고, 나의 적성을 찾고, 나의 미래를 찾는 것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을 여러 번 곱씹어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설구비와 면학분위기 조성이 최우선 과제인 학교에서는 재정부족 문제로 동아리, 탐구활동과 같은 다양한 활동들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미래설계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들을 해나가야 했다.
선택의 연속인 삶에서,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 내린 가장 큰 결단 중 하나는 문·이과의 갈림길에서 문과를 선택한 것이었다. 수학과 과학 분야에 더 재능이 있었던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과를 추천했지만 나는 최종결정을 내리기 직전까지 머리를 쥐어 싸고 고민했다. 물론 어떤 쪽을 선택하든 자신이 얻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채워나가면 되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의 성격을 먼저 공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난 문과를 택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의 너무나도 막연했던 내 꿈,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을 위해 진심으로, 먼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많은 고민과 깊은 이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꿈이 보다 구체화된 현재에 난 어찌 보면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수학과 과학 공부를 하고 있지만 공부 초기에 남들보다 조금은 뒤처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달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지식을 그냥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엇을 위해 배워 나간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꿈을 찾기 위해 도전하느냐 마냐’의 갈림길에서는 보다 큰 결단이 요구되었다. 내 삶의 각도를 트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내신과 수능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신설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직접 조언을 들을 만한 선배도 없었으며, 부모님께서는 현행 교육체제에 대해 전혀 모르셨다. 입시에 있어, 분명 객관적으로 전혀 유리할 것이 없는 나의 이러한 조건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이왕 할 거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결심한 순간부터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낸 1년은 내 삶에서 가장 바빴던 시간이었다. 내신과 수능, 그리고 기타 활동들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나의 그 당시 스터디 플래너를 다시 펼쳐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너무 행복하다’와 같은 직설적인 감정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만큼 뭔가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과정은 신나는 일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영상컨텐츠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영상컨텐츠의 종류는 물론 다양하지만 광고 같은 분야는 그 재치와 예술적인 면들이 좋았고, 방송들은 자신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참 멋져 보였다. 이때보다는 보다 구체화된 현재의 나의 꿈도, 자세한 맥락에서 살펴보면 이때의 꿈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결단을 한 후, 최선을 다해 살았던 1년여간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막상 수시 원서를 쓰는 시기가 되어 담임선생님께 ‘이 내신으로 지역균형선발은 무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상당했다. 내가 수시 원서를 넣는다면 당연히 내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는 지역균형전형을 지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연히 특목고 학생들만 지원하는 전형이라 생각했던 특기자 전형밖에 남은 선택이 없었던 현실은 정말 잔인했다. 또 다시 한 번 스스로 길을 닦아야 하는 시기였다. 이 때, 담임선생님의 도움과 학생부장 선생님의 믿음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내가 경쟁률 세기로 유명한, 그리고 비전을 많이 보기로 유명한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지원하겠다고 처음 선언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응원의 메시지 속에 걱정이 많이 섞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특기자 전형(입학사정관제 전형)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서울대학교 수시모집 설명서’를 보며, 또 자유전공학부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학부의 입장 등을 보며 왠지 모를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 난 많은 학생들처럼 (어떤 과목이든)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도 없었고, Toefl, TEPS, JLPT 등에서 우수한 외국어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으며, 세계 단위의 상들은 당연히 없었고, 교내외 풍족한 인프라를 통한 R&E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화려한 스펙’보다 개개인의 비전을 높이 보겠다는 학부의 야심이 날 끌었고, 열심히 살아온 나의 삶의 태도와 화려하진 않지만 꽤 준비한 실적물들이면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대학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자기소개서에 넣었던 구절을 인용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이후의 삶 전반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자기소개서는 입학사정관제 전형과 관련해 3개를 작성했었으며, 각각 유동적으로 인용했다. 어느 대학교에 지원했던 자기소개서인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저는 2008년 개교한 신설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엔 학생 수가 적어 내신등급을 받기가 어렵진 않을까, 시설 구비가 미흡해 학업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심화반 그룹토의식 수업, 교내 자체 골든벨, 각종 어학실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게 된, 신설 학교를 명문 고등학교로 성장시키기 위한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저의 나약했던 모습을 반성하게 했습니다. 저는 학교라는 집단에 속해있는 존재를 넘어 우리학교의 주체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재정 부족으로 동아리 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교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행정실장님께 동아리에 대한 지원 강화를 요청하기도 하고, 도서부로 활동하며 도서실에 책이 너무 없다며 불평하던 친구들이 생각나 학생회장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도서지원 확충을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도서지원제안서를 작성하고 지역기업들을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비록 학교라는 작은 집단 속에서의 행동이었지만 주체로서 학교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너 자신을 소중히, 다른 사람을 소중히, 네 학교를 소중히’라는 학교의 모토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자 자연스레 애교심(愛敎心)이 생겼고, 이로 인해 생겨난 삶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는 저의 자신감을 더욱 키웠습니다. 부족한 외국어(일본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일본 세츠고교와의 교류에 적극 참여해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비록 외부 강사를 유입하기는 힘들었지만 꿈을 위한 경제 공부를 하기 위해 선생님과 친구들을 설득한 결과, 경제 보충수업 개설에 성공한 것 등은 이러한 자신감이 낳은 의미 있는 결실이었습니다.
‘내게 좀 더 좋은 상황이 주어졌더라면’이라고 바란 적도 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시작’은 불투명해 두려울 수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기회’를 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하 생략)’
많은 학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스펙’으로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데 자기소개서라는 중요한 공간은 ‘내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예컨대, 학업에 대한 ‘의지’라든가 내 가치관의 ‘변화’라든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리더십 같은 것들을 담기에도 너무나 부족하다. 나는 몇 항목 되지 않았던 자기소개서에 내 삶의 태도를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게 있어, 경제경시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는 것보단 경제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교내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 선생님께 보충 강좌 개설을 요청한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었고, 설령 관련 시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내 실력이 부족해 상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경제 관련 홈페이지들을 돌아다니며 관련 자료들을 스크랩하고 공부한 자료들, 그리고 나의 생각들을 적은 노트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어를 워낙 잘했거나 혹은 잘하게 되어 높은 자격증 급수를 딸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히라가나를 배운 나로서는, 남들이 다 언·수·외 과목과 관련한 보충수업을 신청할 때, 꾸준히 일본어 보충수업을 신청해 일본어와 일본에 대한 문화를 공부해 가며, 역사 공부로 인해 생겼던 일본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게 되고, 나아가 세츠고교와의 교류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더 중요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입학사정관제는 교내활동의 충실성과 봉사의 경우 지속성, 또 자신이 한 활동들의 미래 비전과의 연관성‘만’을 중요하게 본다고 생각해 이에 지나치게 얽매이곤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충실성, 지속성, 연관성’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에 끼친 ‘의미’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처음 모의유엔이라는 것에 대해 들었을 때 딱히 내 꿈과 관련 있어서라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도전, 경험을 해보고 싶어 지원한 계기가 더 크다. 이는 사실이고, 구지 신청동기를 억지로 짜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활동을 하게 된 솔직한 동기와 내가 느낀 것들, 배운 것들을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서도 내가 썼던 자기소개서의 구절을 인용해 보았다.
‘모의유엔은 첫째, 스스로 해나가는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포스트교토체제의 수립방안’이라는 주제를 놓고 실제 모의유엔이 열리기 전 수많은 사이언스지와 이산화탄소 감축에 관한 과학기술 논문을 찾아 공부하며 기존 교토체제의 수정방안을 고민하고, 도서국 현지인들과 지속적으로 메일을 통해 교류했습니다. 한 달 가까이 하나의 사안에 몰입하며 공부하자 단순히 영어 공부를 위해 읽어오던 국제 신문에 국제 정치나 환경과 관련한 기사가 나오면 더욱 유심히 읽고 스크랩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국제 정치나 세계적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또한, 협의체 대표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환경 관련 논문이나 기사들을 밤낮으로 수집하며 정보 공유에 앞장서고, 기존에 협의되었던 교토 프로토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독학으로 경제공부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크고 작은 변화들은 학업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소외받는 도서국 연합체의 외교관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또 다른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도 차지하지 않으면서 누구보다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힘쓰는 현지인들은 제게 진정한 글로벌 리더의 덕목인 세계 시민 의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저 또한 나 자신보다는 세계 전체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또한 세계의 난민 및 기아문제의 해결을 위해 UNHCR과 국제법상의 환경난민의 지위 수정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 속에선 도서국들의 처지에 대한 진정한 공감을 통해 앞으로 수정해나가야 할 국제적 여론방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협의체 대표로서 밤새도록 결의문 협상을 하는 과정 속에선 협동 능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입학사정관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라는 간접적인 도구를 이용해서든, 면접을 통한 직접적인 표출이든, (요즘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논술에서도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은 보통 1개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내 '업적'을 설명하는 공간이 아닌 나의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나의 비전을 담아내고, 나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공간인 것이다. 흔히들 포트폴리오라고 부르는 것은 다만 자기소개서의 내용들을 증명해 주는 부수적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스토리텔링’이라는 경험에 익숙치 않다. 내 삶의 변화, 했던 경험들을 일련의 고리로 이어 설명하는 것이 낯설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는 스트레스의 존재가 된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도 힘들고, 논술도 면접도 줄줄이 불안할 뿐이다. 스토리텔링과 관련한 능력은 물론 교육체계 자체에서 기인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우선 스스로가 경각심을 갖고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면접, 논술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았었다. 적극적으로 학업 커뮤니티를 이용해 알게 된 선배님들께 물어본 결과,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재밌어서 다녔다.’, ‘친구 사귀기에는 좋다.’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학원에 다니는 것이 별로 효율적이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면접과 논술 역시 자신을 설명한다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학원에서는 수많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어’ 주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몇 가지 주제들을 깊이 공부하고 연계해 생각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학원을 선택한 대신, EBS‘논술 빈출 주제20’에 대한 논술 강의와 면접 강의를 들었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자부한다.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며, 또 논술과 면접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가며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면접 때도 과학철학에 관한 교수님의 질문에 대해 발터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논쟁을 예시로 들어, 깊이 생각해 보았던 나의 생각들을 자신 있게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연습이 여러 번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평소에 내신이나 수능 외에 스스로 했던 공부들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자면, 교과 외 공부에 있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점인 ‘진정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또, 나는 이에서 파생되는 연계적 공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입학사정관제라는 입시에 도움이 되었으며, 이러한 도움이 나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했던 공부는 ‘지식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통해 한 공부였다. 이 책은 철학·과학·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새로운 학문영역이나 문제의식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다양한 학문의 문제의식에 대한 생각을 기입하고, 관련 자료(논문, 기사 등)들을 찾아 공부하며, 하나의 주제를 다각도로 깊게 사고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문과라는 이유로 과학이나 경제 분야의 담론들을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에 ‘문과의 특징이라 믿었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를 설명하는 경제 이론에서 요구되는 수리적 사고에 가로막혔고, 동물 복제에 대한 생물 지식이 잘 이해되지 않아 생명 윤리와 관련한 사회의 속성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와 같이 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녹아난 표현을 적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진정성은 승리한다.’는 나의 굳건한 믿음은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까지 정말 큰 영향들을 미쳤는데, 가령 국제 신문을 스크랩하며 공부할 때는 언제나 남보다 조금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다. 외국과의 조약 체결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실제 체결된 조약문을 뽑아 기사의 평가를 고려하며 읽어 보기도 하고, 책들을 독해하며 나의 추론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땐, 인터넷에 추론과 관련한 키워드들을 검색해 가며 LEET(법학적성시험), PSAT(공직적격성평가) 관련 자료들을 뽑아 공부해 보기도 했다. 물론 성적은 처참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 주저없이 행동에 옮기는 습관은 삶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삶을 만들어 가겠다’는 결단 하에, 그 전보다 훨씬 바쁘게 살았던 2년간, 나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얼핏 뭔가 ‘화려’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 모두가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활동들이고, 열정과 진정성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큰 도움 없이도 자신의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학교의 지원도, 선배의 도움도, 입시에 관한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도 없던 내가 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내게 좀 더 좋은 상황이 주어졌더라면’이라고 바란 적도 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 훌륭한 리더란 상황을 탓하기보단 남들보다 조금은 느릴지라도 그것들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과정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에 대한 진정한 고찰 없이 입학사정관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자기소개서를 ‘조작’한다. 보통 자신이 3년간 한 활동들을 ‘끼워 맞추기’에 가장 적합한 과를 선택하고, 자신의 꿈은 일주일 만에 생성된다. 이는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기본적으로 단과대 각 모집단위의 성격에 알맞은 학생들을 뽑자는 취지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의 근본에 있는, ‘학생의 꿈과 열정을 중요시하겠다.’는 대학 측의 입장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지원했던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지원 분야에 열정과 잠재력이 있는 학생’이라는 특기자 전형(입학사정관제 전형)의 지원 조건에 있어, 지원 분야를 다른 과들과는 약간 다르게 설명하고 있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자유전공학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과들은 수학과라든지 영문학과와 같은 특정 학과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학과 부문에 열정과 소질을 보이는 학생을 선발한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자유전공학부는 여기서 말하는 학과 부문에의 열정과 소질을 ‘주체적 학습(active learning)', ‘통섭적 마인드’,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 이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난 내가 이러한 학부의 취지에 맞는 학생이라고 생각했고, 자유전공학부를 목표로 삼았으며, 그 결과 합격했다. 어느 과를 지원하든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고, 그에 걸맞는 알찬 삶을 살아가고,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과 지망학과에 대해 고민해 본 결과 자신이 그 학과에서 말하고 있는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한다면 합격할 수 있다.
내가 지원한 과가 특히 자유전공학부였던 영향도 조금은 있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내가 한 활동들을 꼭 관심 분야에 끼워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은 갖지 않았다. 다만, 이전 선배들의 데이터가 없어 처음에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막막했을 뿐이었다. 특히, ‘자신의 학업능력과 특기능력을 설명’하라는 자기소개서의 한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번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 많은 학생들이 쓰는 ‘영어, 수학, 리더십’ 같은 글의 구조 틀보다는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공식 홈페이지에 제시된 ‘인재상’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주체적 학습’, '통섭의 노력’,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 이 세 가지 틀을 이용해 내 3년의 삶을 정리했다. 입시 때에는 분명 모두 다 자신만의 비전을 제시하는 듯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자신의 관심 분야조차 잘 모르는 학생들도 있다. 꿈을 서둘러 결정할 필요는 없지만 보다 알찬 삶을 위해, 그리고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언제나 일상생활에서 이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란 것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의 삶’, ‘나의 꿈’이라는 표현이 이제는 너무도 식상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빛 바라지 않을 표현들이라 믿는다.
아직 오랫동안 대학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관계들에 있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서로의 꿈에 대해 듣고 조언하면서이다. 이과생이었지만 글 쓰고 생각하는 걸 좋아해 철학올림피아드에 나가 좋은 결과까지 얻었다는 친구, 세계의 경제를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 싶다는 친구, 중동 지역에 여성들을 위한 기업을 설립하고 싶다는 친구, 법학뿐 아니라 물리나 화학 공부도 열심히 해 멋진 변리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 대기와 해양의 메커니즘에 대해 보다 깊이 연구해 보고 싶다는 친구. 하나 둘 친구들의 비전을 듣다 보면, 세상의 시선과 관계없이 자신의 꿈을 얻어 낸 친구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친구들과 함께 인연을 맺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다.
멋진 친구들을 보며, 또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난 오늘도 끊임없이 ‘나의 꿈’, ‘내가 원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앞에서는 과학예술종합허브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보다 본질적으로 들어가 ‘행복한 공간’, ‘철학 있는 공간’, '과학적인 공간’과 같은 테마에 관심이 많은 나는, 꿈의 현실화를 위한 공학 공부에 가장 먼저 집중하고 있고, 공간의 디자인적인 측면에 있어서 기하학이라든가 색채학에 흥미를 갖고 있다. 또, 공간은 친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에 기반해 좀 더 재밌고, 우리의 건강에 좋은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며, 생물학 교양수업을 듣고 있다. ‘스페인어권 문화의 이해’ 수업을 들으며, 그들의 융성한 문화들 요소 요소로부터 여러 영감들을 얻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다양한 학문들을 다룬 책들을 읽고, 연계적으로 공부하고 생각해가며, 또 영상매체에 대한 관심으로 UCC를 작성해 보기도 하며, 내 꿈을 한 조각씩 맞추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기에 수강신청을 할 때도 관심 분야들을 중심으로 큰 고민 없이 선택했고, 모든 수업들을 재밌게 듣고 있다. 지금도 하루하루 나의 꿈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내 친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한 일상의 ‘꼼지락거림’들이 결국은 삶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공간 과학’·'공간 예술’이라는 꿈과 관련해 대학에 온 이후로 구체적으로 내 삶에서 얻은 ‘꼼지락거림’들의 예를 들자면, 작곡·밴드 동아리에서, 비록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비트를 배우고, 음향학·화성악을 공부하는 선배들을 지켜보며, 음악의 공간에의 적용에 대해 생각해 본 것. 또 음대 주관의 'What Makes Mozart A Genius?" 프로그램을 찾아들으며, Mozart의 아이디어를 배워 본 것. 구체적으로 천재적인 음악가 Mozart의 화음을 갑자기 이탈하는 연주,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연주, 예상치 못했던 높은 음이 주는 신선한 느낌의 연주 등을 듣고 느끼며, 인간의 심리와 음악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본 것. 친인간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인지과학과 관련한 세미나들을 찾아 들으며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본 것.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갔던 ‘세계 IDSF그랜드슬램스탠다드 & 제8회 회장배 전국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서 그들의 의상과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며 또 설익은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해 본 것. 캠퍼스의 미술관을 찾아 작품들을 멍하니 보다 말고 계단에서 울리는 소리의 공명에 대해서,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의 각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 일상의 ‘꼼지락거림’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가히 끝이 없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무엇은 수업과 동아리, 기타 교과외 활동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내 삶을 만들어 낸다.
꿈은 우리의 그릇을 확장시키는 능력이 있다. 물론 고교 시절의 성적과 학업을 위한 기본적인 역량들을 보는 것이 입학사정관제이다. 절대 내신이나 수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위에는 개인의 비전이 있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불만의 말이 많지만 입학사정관제는 분명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해 보게 함으로써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갈망하게 한다고 믿는다. 대학에 와서 교수님들께서 ‘어린 청춘의 학생들이 너무도 보수적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현실’에 사는 학생들은 자신의 꿈조차 ‘현실적이게’ 꾼다. 물론 이 ‘현실’과 관련해 ‘현실적’이라는 개념을 제공한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이긴 하지만 가능성의 존재인 어린 학생들이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과 ‘미래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이냐’는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난 내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입학사정관제의 가능성을 믿는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나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너의 꿈은 무엇이냐고. 명료화된 문장으로 완벽하게 말하진 못하지만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떠듬떠듬 대답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 꿈은 사람의 성장 시기로 치자면 3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말하기가 조금은 낯설고,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힘들고,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1학년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너무도 당당히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했던 순간과 비교하면 큰 성장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새내기 대학생의 가장 단기적인 목표는 1년 안에 내가 살아갈 ‘삶’을 그리는 것이다. 대학 입시가 달성목표로 주어지는 고등학교 때에 비하면 엄청난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나의 꿈. 그리고 우리 모두의 꿈. 꿈은 보통 저절로 찾아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이 끊임없이 갈망해야 하고, 주변의 소스들로 구체화시켜 나가야 한다. 내 꿈의 구축. 그리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하는 하루하루의 삶. 어떠한가. 내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에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 보지 않겠는가.
*이 글의 저작권은 서울대학교 김도연 양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