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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사정관제 藥인가 毒인가

올해부터 대학들 속속 도입


▶찬성

대학이 원하는 인재 선발

전문성.투명성 확보 용이

고교 전인교육 유도 효과


▶반대

대필-검증 전문인력 부족

평준화 역행 본고사 부활

명문고 출신에게만 유리



“자네 내신성적이 많이 낮은데 어떻게 우리 대학에 지망했나?”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에 A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내신성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A군은 준비해온 답변을 조리있게 설명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중학교 때 반에서 30등 밖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실직하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정신적으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교 가서야 다시 마음을 잡아 공부를 시작했지만 기초가 워낙 부족해 쉽게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내신이 5등급이라고 하지만 고3 때 내신만 보시면 전 과목 3등급 안쪽입니다. 고2 때 낮은 내신이 아직 제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만 절대 다른 학생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면접을 진행하던 입학사정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달 후 A군은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얘기지만 당장 올해 말부터는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 전망이다. 건국대는 최근 중학교 때에 비해 고등학교 때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게는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도입하고 학생들이 방황하는 시기인 고1 때의 내신성적은 반영하지 않는 것 등을 골자로 한 ‘패자부활 전형’을 신설했다. 이 전형에 따르면 중학교 때 3등급, 고등학교 때 2등급을 받은 학생보다 중학교 때 7등급, 고등학교 때 3등급을 맞은 학생이 내신점수를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 올 연말부터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입학사정관제’ 덕분이다.

건국대 경희대 동국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등 주요 대학이 2009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할 뜻을 밝히면서 성공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각 대학이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입학사정관제도는 원래 미국 대학의 학생 선발방식 중 하나. 미국의 각 대학은 전직교사.교장.교육장 등으로 구성된 입학사정관을 두고 학생을 심사한다. 이 심사에서는 지원자의 학업성취도와 교육여건은 물론 부모의 직업이나 가정환경, 출신지역 등 개인 특성까지 모두 검토한다.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받아 성장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도 물론이다. 필요하다면 학생이 살고 있는 지역과 학교를 방문해 학생이 자기소개서에 쓴 글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도 판별한다. 이를 통해 각 대학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자율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선발할 수 있다. 또한 대입제도의 전문성과 신뢰도.투명도가 높아져 사회적으로도 큰 이득이다. 각 고교도 암기식 교육 대신 전인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

문서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한국의 특성상 입학사정관제도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이기종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는 “입학사정관에게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 학업계획서 등을 모두 ‘대필’해주는 전문가에게 맡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마치 리포트나 졸업논문을 대필해주는 사이트와 사람들이 생겨났듯이 입학사정관에게 제출하는 서류도 대필받아 제출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이를 해소하려면 1만5000명 정도 규모의 학교에선 최소 20~30명의 상시입학사정관을 선정해 학생의 출신 학교, 지역 등을 발로 뛰며 현장검증을 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 정도의 전문인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입학사정관이 교육권력으로 등장하고 본고사 부활을 앞당긴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현직 고교 국어교사 정모(여.29) 씨는 “서울대 입시를 맡은 사정관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몸값 비싼 논술선생님이 될 것”이라며 “입학사정관의 면접이 실질적인 본고사가 되거나 고교평준화를 무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입학사정관제도가 일명 ‘자사고’ ‘명문고’ ‘특목고’ 출신 학생을 위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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